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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이공 동물원: 일상의 틈에서 마주한 자연
입구를 지나자, 'PHÒNG BÁN VÉ'라 적힌 매표소가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. 반듯하게 늘어선 사람들의 등 뒤로,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입장권 가격표가 햇살을 타고 반짝였다. 사이공 동물원, 이름만큼이나 이국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곳.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바라보는 하루의 시작에 서 있었다.
이곳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지붕 끝에 앉아 하늘을 응시하던 침팬지 한 마리였다. 고개를 푹 숙인 채, 마치 고민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 괜히 마음이 동했다. 그다음은 푸른 그늘 아래서 조용히 잠을 청하던 이구아나들. 피부결이 도드라지는 그들의 등 위로는 오후의 열기가 지나는 중이었다.
놀이기구가 설치된 정원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,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. 회전하는 해바라기 놀이기구, 위아래로 쿵쾅이는 타워 드롭. 동물원이라는 테두리 속에 작은 놀이공원이 공존하는 공간. 생명의 역동성과 놀이의 유희가 교차하는 이 풍경이, 잠시나마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.
곰 우리 앞에서는 의외의 장면이 펼쳐졌다. 커다란 불곰 한 마리가 굵은 타이어를 끌어안고 놀고 있었다. 두 앞발로 끌어당기고, 이리저리 밀고, 때론 몸을 비틀며 타이어를 목에 걸어보기도 했다. 단순한 반복 같지만, 그 안에 나름의 규칙과 놀이의 리듬이 있는 듯했다. 철창 너머로 전해지는 그 생동감이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.
우리 가족은 곰의 인형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, 물속에 잠긴 하마를 관찰하며 조용한 감탄을 나눴다.
사이공 중앙우체국: 엽서 한 장에 담긴 마음
동물원을 나와 택시를 타고 몇 분을 달렸을까. 멀리서부터 베이지빛 유럽풍 건물이 시선을 끈다. 사이공 중앙우체국.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, 호치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다.
우체국 내부 사진은 촬영하지 못했지만, 그 공간의 정적은 지금도 생생하다. 오래된 나무 기둥과 아치형 천장, 낮게 깔린 목소리들 사이에서 나는 조심스레 편지 한 장을 썼다. '한국에 있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'. 여행의 여운을 다음의 나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.
우체국 밖에서는 거리의 분주함이 대비되듯 다가온다. 한쪽에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음식을 준비하는 노점상 아주머니, 그 앞에 둘러앉은 여행객들의 표정은 호기심 반, 낯설음 반이다. 그 사이에서 우리는 로컬의 정취를 오롯이 느꼈다.
노트르담 대성당: 멈춘 공간 속 걷는 생각
그 옆, 몇 걸음만 옮기면 만날 수 있는 붉은 벽돌 건물.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. 그러나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. 대신 책거리 너머로 바라본 그 모습은, 어쩐지 멀어진 성소처럼 느껴졌다.
책거리에는 무수한 출판사의 부스와 현지 독립 서점이 모여 있었다. 사람들은 책을 뒤적이고, 어떤 이는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. 여행지 한복판에서 책을 읽는 이들을 바라보며, 나 또한 조용히 생각했다. ‘읽는다는 건 결국 멈추는 일일지도 몰라.’ 그렇게 생각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번졌다.
성당 입구까지 다다른 우리는 입장하지 못했지만, 그 앞에서 사진을 남기며 하루의 마지막 기록을 채워 넣었다. 닿지 못한 공간이 주는 아쉬움은 오히려 더 많은 사유를 남긴다.
호치민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풍경이 되고, 감정이 되었으며, 끝내 기록이 되었다.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, 목적지가 아닌 그 사이를 걷는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. 사진은 사라져도, 오늘의 마음은 오래 남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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